“새 길 있음을 인정않는 이들은 슬퍼한다”
▲ 루게릭병으로 온몸이 굳어가는 제주도 사진작가 김영갑의 두모악 갤러리. 아름다운 정원은 죽음앞에서 당당한 김영갑의 피눈물나는 투병일지다.
김영갑의 정원에서 새 길을 찾다
후배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나의 어설픈 도피는 추자도에서 맥없이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후배는 제주도에 사는 사진작가 김영갑과 그의 갤러리를 안내했다.
제주도 성산읍에 있는 김영갑의 사진갤러리 ‘두모악’을 찾았던 날은 내 마음의 풍경처럼 흐렸다.
폐교를 임대해 만든 갤러리 두모악은 그의 사진만큼이나 슬프게 아름다웠다. 제주도 사람이
아니면서 제주도에 살며 20여 년 동안 제주도를 사진 속에 품어온 김영갑. 그가 아름답게
꾸민 갤러리 정원은 그의 피눈물 나는 투병일지이기도 하다.
김영갑은 루게릭병으로 3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병원의 진단을 받았다. 70kg이 넘었던
그의 몸무게는 지금 40kg을 갓 넘기고 있을 뿐이다. 그가 아름답게 꾸민 정원은 갈수록
굳어가는 근육을 놀리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어쨌든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가 만든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그의 사진 속을 걷는 것보다 더 깊은 걸음으로 그의 정원을 걸었다. 부끄러웠다,
그에게 혹은 내 인생에게.
어리석고 유약한 나는 누구나 겪을 법한 인생의 고비 앞에서 체념함으로써 평온을 구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끝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일을 찾았다. 김영갑은 예정된 죽음처럼
굳어가는 근육을 쉬지 않고 놀리며 평온을 찾아갔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호흡 곤란으로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그는 당당하게 절망을 대면하고
있다. 2003년 봄부터 김영갑은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치료를 해오고 있다.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나를 보고 지인들은 안타까워한다. 찾으면 치료방법이 없지도 않을
텐데 기어코 고집을 부린다고 가여워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죽음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그 길을 웃으면서 갈 것이다.”
-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김영갑의 갤러리를 방문한 후 난 서둘러 도시로 돌아왔다. 내가 상처 입었던 곳, 나를 좌절케
했던 곳 그러나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의 몫이 있는 곳으로. 인생의 생채기나지 않았던 그 먼
어느 날처럼 유쾌하게 일을 다시 시작했다. 서먹했던 이들도 만났다.
그렇게 세밑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 내겐 그럴싸한 지위도 넉넉한 돈도 없다.
그리고 분주하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바쁘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며 즐겁다.
간혹 생각한다, 추자도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던 날의 나를. 그때 아프고 쓸쓸했던 나도
소중한 나일뿐이다. 잊고 산다고 그날의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진 않는 것처럼 애써 부끄럽게
여기며 감출 지난날의 아픔도 아니라는 것을 이젠 안다. 죽음에 당당함으로써 생명을
이어가는 제주도 사진작가 김영갑처럼, 절망과 좌절에 당당함으로써 희망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이젠 말할 수 있다.
2004년의 마지막 해가 지는 자리에 2005년의 새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다. 새해엔 체념하고
포기해서 얻을 수 있는 평온이라면 나는 두 번 다시 평온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새해엔 아픔
없이 얻을 수 있는 풍요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죽음처럼 굳어가는 몸을 움직여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 김영갑처럼 내 진정을 바쳐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만큼의 평온과 풍요만 새해엔
누려야겠다.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길을 볼 수 없는 이들은 나를 몹시 가여워한다. 새로운 길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슬퍼한다. 막다른 골목에서 새 길을 발견했으므로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나에게 허락된 오늘을 즐길 수 있어서 마음이 평화롭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 두려움 없이 기꺼이, 기쁘게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일 게다.”
-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중에서
이주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