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
[중앙일보 2003/12/11] 사람이 희망이다.

 

당신의 겨울보다 더 추운 삶이 있습니다. 당신의 희망보다 더 작은 꿈을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작은 꿈을 세상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꿈꿀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웃고 있습니다. 허허로운 눈매가 쓸쓸해 보입니다. 사진작가 김영갑(사진). 주위로부터 '미 친 놈'소리를 들으며 스무해 가까이 제주의 풍광을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아왔습니다. 해를 넘기면 그의 나이 마흔아홉.

그에게 새해는 생명만큼 소중합니다. 아니, 생명 그 자체입니다. 4년 전 의사의 '사형 선고'에선 없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습니다. 몸은 여전히 석고처럼 굳어 있습니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는 인부들에게 내일도 늦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봄이 되기 전 갤러리 앞마당 정비를 마치고 싶어서 입니다.

 


해질녘 제주는 속내를 드러낸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의 몸짓이 안쓰럽다. 올 초 ‘김영갑 사진전’에 전시됐던 그의 사진.

이번주 week&은 조금 특별한 분들을 초대했습니다. 공통점이라면 몸이 조금 불편하거나 건강이 안 좋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하루는 결코 어둡지 않았습니다. 불행을 되새기며 웅크리거나 뒷걸음치지도 않았습니다.

경기도 포천의 한 카페의 종업원들은 5월의 하늘처럼 해맑게 웃었습니다. 이일권(32).윤성연(19).김미향(18)씨. 이들이 정신지체 장애인이란 건 중요치 않습니다. 여느 종업원처럼 빵도 굽고 커피도 만들고 손님을 맞이합니다. 컴퓨터 강사 김병호(37)씨의 하루는 차라리 힘차고 당당합니다. 7년째 앞 못보는 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또한 시각장애인입니다.

부쩍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당신의 어깨도 처져 있나요. 일상에 찌들고 타인에 치여 세상을 욕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희망입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