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나는 자주 현기증을 느꼈다. 온전하게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그에 대한 해설을 읽고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수도원 건물을 개조한 작은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중세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벽돌로 이뤄진 방과 방 사이를 넘나들며 열심히 눈앞의 작품을 그리는 중이었는데 마치 자신의 노트 안에 작품을 옮겨 담는 것처럼 보였다. 해설을 읽거나 사진을 찍는 법도 없었다. 그의 감상법을 곁눈질로 훔쳐보던 나는 처음으로 틀 안에 갇힌 시선을 꺼내 ‘다르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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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과 고래
그런 의미에서 지난 겨울에 방문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가치를 둔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버려진 초등학교를 개조한 이곳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도 제주의 풍경을 찍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사진작가 김영갑이 정성을 다해 가꾼 공간이었다. 두모악이라는 명칭은 한라산의 옛 이름에서 따왔다고. 작품 아래 돌무더기가 쌓여있고 이따금 바람이 지나가는 소박한 내부로 들어서면 특별한 설명 없이도 그가 얼마나 자연을 동경했는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얼마나 강인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살아생전 그가 가장 좋아했던 풍경은 ‘오름’이다. 당시 오름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동물에게 풀을 먹이는 목동,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를 먼발치에서 보는 것이 전부일 만큼 한적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 후로 20년간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이끌고 제주 사람들의 삶의 무대인 중산간 오름을 관찰했다. 그러다 더 이상 밖에 나설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작업이 끝났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동안 마주했던 풍경을 기억에서 하나둘 꺼내어보던 그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자연과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온종일 깊은 생각에 잠겨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만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들여다볼 뿐 무엇을 보려고 느끼려고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들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보고 싶으면 보고 느끼고 싶으면 느끼고 깨닫고 싶으면 깨달으면 된다. (중략) 침대에 누워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편안하고 즐겁다. 두 눈으로 보았고, 두 귀로 들었고, 두 손으로 만져보고, 두 개의 콧구멍으로 맡아보고, 온몸으로 느껴보았기에 확신했던 것들이 진짜배기가 아니라 허드레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20년 동안 오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도 모르면서 두 개 세 개 욕심을 부렸다. 중산간 오름 모두를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하겠다는 조급함에 허둥대었다. 침대에 누워 지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같은 과오를 범했을 것이다.
- 김영갑
20년간 오름을 보고도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소설 [모비딕]에서 평생 고래를 쫓은 뱃사람 에이해브의 탄식과도 일치했다. “나는 고래를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고래의 꼬리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머리를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작품에 대해 열심히 이해하고자 했던 지난 노력을 돌이켜보며 의문이 생겼다. 평생을 따라다녀도 알 수 없다면, 어떤 대상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보는 건 어쩌면 커다란 고래의 꼬리처럼 극히 일부분이 아닐까?
오혜진 에디터